✨보조개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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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of.bsky.so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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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of.bsky.social
Coffee in the morning. Beer sometimes, but mostly Tea midday. Wine around dinner time. Whiskey later on.
Planner/시한부 한량/S Univ./✨
“쓰러지기 전엔 아무도 못 나간다.”고 벌써부터 엄포를 놓은 상황이었다.
쓰러지기 전에 못 나가면 쓰러지면 되지.
어설프게 연기하다 들키지 말고 진짜 쓰러질 만큼 마시자. 그렇게 작정하고 마시기 시작했는데 취하질 않는다.
술이 센 편이긴 했다. 최근엔 거의 마시지 않지만 학부 때는 소주 여덟 병을 마시고도 두 발로 멀쩡하게 걸어서 집에 들어갔다. 필름이 끊긴 적도 없었다.
안 마시면 주량이 줄어드는 줄 알았더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February 7, 2025 at 8:18 PM
A는 근래 술을 자주 마시는 것 같았다. 취하면 현재나 미래가 아니라 과거를 사는 사람이 있는데 A가 그랬다. 과거의 영광 혹은 과거의 절망. A에게 영광의 기억은 없으니 취하면서 곱씹는 건 주로 절망이었고 절망의 중심에는 늘 내가 있었다.
A는 술에 취해 과거의 절망 어디쯤을 허우적거리다가 이런 식으로 나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를 걸어서 작정이라도 한 듯이 저주를 퍼붓는다. 한평생을 불쌍하게 살아온 팔자 사나운 새끼가 너 이 정도 신세 한탄도 못 하냐고 A는 그러지만……
February 7, 2025 at 12:03 PM
모두가 전전긍긍하며 시험지에 몰두할 때
나 혼자 붕 떠있는 듯한
기분이 좋았다.
January 31, 2025 at 12:42 PM
나는 한 번 입을 열면 지옥문이 열린 듯 굴었지만 대체로 과묵했다. 그는 침묵을 즐길 줄 알았다.
나와 대화하는 걸 퍽 어려워 하면서도, 침묵이 너무 길어지면 눈에 띄게 불편해하는 그와 반대였다.
January 31, 2025 at 12:42 PM
며칠간 겨울치곤 따뜻한 날이 반복돼서인지 졸업식에는 비가 내렸다. 새벽부터 내린 비로 젖은 땅은 일찍부터 얼기 시작했다. 입술을 열 때마다 잇새로 희뿌연 김이 서렸다. 춥고 습한 날씨에 사람들은 몸을 움츠리기 바빴다.
펭귄이 허들링하듯 또래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운데 동떨어진 그녀는 누가 봐도 외톨이였다.
January 31, 2025 at 12:42 PM
전체가 피클통인데 내 최애만 멀쩡한 오이이길 바라는건 불가능이라는말 절실히 느끼고 있다.

처음이라 아무런 비교군이 없다고 해도 틀림없이 좋은 것은 좋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January 31, 2025 at 12:42 PM
피로는 문을 꼭 닫아도 쌓이는 먼지처럼 성실하게 쌓였다.
January 31, 2025 at 12:42 PM
(내게는) 안타깝지만 (모두에게는) 다행히도
January 31, 2025 at 12:42 PM
그리고 소주! 술 이야기를 하는데 소주를 빼놓고 갈 수는 없다. 참이슬파와 처음처럼파의 대결은 찍먹파와 부먹파 혹은 민초단과 반민초단의 싸움만큼이나 깊은 역사가 있지 않은가.

등산을 하고 내려오는 길에는 호기롭게 참이슬 빨강이를 먹어야 할 것 같고, 유행을 따라가려면 두꺼비가 그려진 진로 소주를 마셔야 할 것 같다. 제주에
가면 한라산을, 부산에 가면 시원이나 좋은테이를, 충청에 가면 시원청풍을, 전남에 가면 잎새주를 마셔야 하고
January 31, 2025 at 12:41 PM
볕이 쨍하게 내리쬐어 뒷목을 따라 땀이 흘러내리는 날에는 과연 맥주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여름밤, 반팔 티셔츠 위에 가볍게 셔츠를 걸치고 집 앞 편의점 파라솔에 앉아 마시는 맥주에 어울리는 것은 과연 연애담이다.
맥주의 장점은 작정하고 먹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라서 "커피 한잔 할까?"에서 반 보만 앞으로 나아가도 "맥주 한잔 할까?"까지 올 수 있다.
빨강, 파랑, 초록의 원색적인 플라스틱의자에 앉아 새우깡이나 오징어 따위를 대충 펼쳐 놓고 맥주를 마실 때면 이런 멘트가 나옴직하다.
"야, 나랑 사귈래?"
January 31, 2025 at 12:41 PM
막걸리집에서 마시는 막걸리에는 이것과는 또 다른 정취가 있다. 동학, 무월, 술익는마을, 산울림 등 어딘가 민주화 운동 느낌이 나는 간판을 내건 막걸리집에는 으레 김광석이나 이문세, 유재하 노래가 나오기 마련이다.
내가 대학교를 다닐 때 학교 앞에 있던 막걸리집은 지하에 있어서인지 인터넷이 잘 터지지 않아서 뭔가를 검색하거나 카톡이라도 보낼라치면 일 층까지 올라가야 했다. 덕분에 술을 마시는 동안 의도치 않은 디지털 디톡스를 하게 되었고, 친구의 이야기에 온몸을 풍덩 담글 수 있었다.
January 31, 2025 at 12:41 PM
창문을 열었는데 비가 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부억에 간다. 부침가루에 냉동실에 있던 해산물이며 파를 되는대로 썰어 넣고 주걱으로 착착 섞는다.(중략)
전은 '굽는다'거나 '튀긴다'는 동사보다는 역시 '부친다'에 찰싹 달라붙는다. 단어에 딱 붙는 동사를 쓰면 날씨에 어울리는 술을 마실 때만큼이나 속이 시원하다. 타닥타닥타타. 차륵차륵차륵. 파전 부치는 소리는 빗소리랑 꼭 잘어울린다. 두어 장 부치고 나면 살얼음이 생기도록 냉동실에 넣어둔 막걸리를 꺼낸다.
January 31, 2025 at 12:39 PM
1표 차이로 총리가 되었다는 사실이 뭐 그리 중요한가. 주눅들 필요 없다. 1표 차로 이기든 100표 차로 이기든, 일단 이긴 사람에게는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가 되었다는 역사적 책무만이 남을 따름이다.
January 31, 2025 at 12:37 PM
뭐든 후발 주자가 갖는 장점이 있다. 앞선 선배들이 이룬 성과와 문제점을 분석하면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고, 개발에 소요 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나라가 그랬고, 근대화 과정에서 독일이 그랬다.
독일은 영국보다 산업화가 늦었다. 그러나 영국이 겪은 과정을 참고하면서 빠르게 압축 성장할 수 있었다. 헌법 또한 그렇다. 바이마르공화국 헌법은 후고 프로이스 같은 법철학자, 법이론가들이 스위스, 영국, 미국 등의 헌법과 정부 구조 등을 분석하고 조합해
January 31, 2025 at 12:37 PM
2:6:2의 법칙이 있더라고요. 20%의 사람들은 뭘 해도 좋아해주고, 60%의 사람들은 결과물을 보고 나서 평가하고, 20%의 사람들은 뭘 해도 싫어하고. 그래서 뭘 해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말고 나를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미 일어난 일을 바꿀 수는 없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 사람들의 시선이 응원으로 바뀔 수 있으니까, 그런 미래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January 31, 2025 at 12:37 PM
가끔 서울은 여름을 흉내 낸 세트장 같다. 지독한 열대야가 매년 이어지는 곳인데도 타들어 가는 고통만 있고 여름의 맛은 잘 느낄 수가 없었다.
샤워하고 나와 미숫가루를 타 먹을 때. 목이 말라 무작정 보이는 카페로 들어가 냉커피 한잔 들이켤 때.
비 내린 저녁, 열기가 한풀 꺾인 치킨집에서 맥주를 마실 때. 제철 과일을 베어 물 때가 아니면.
January 31, 2025 at 12:37 PM
여름이 지나간다. 중국식 냉면인 히야시추카(중화면에 오이, 햄, 달걀지단 등을 올리고 새콤달콤한 간장소스에 비벼먹는 음식) 를 슈퍼마켓에서 찾게 된다거나,

언제나 달콤한 복숭아, 시원한 수박, 상큼한 샤인머스캣 같은 여름날 간식 같은 것

땀 냄새로 뒤범벅이 된 만원 전철 안에서 보게되는 불꽃놀이.
January 31, 2025 at 12:36 PM
질투하는 사람 눈에 행복은 얻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얻지 못하는 것에 있었다.

형광등, 가지런히 줄 맞춰 놓인 하얀 책상과 의자, 거기 앉은 학생들. 칠판을 등지고 서있는 학원 강사에게서는 수상한 기운을 감출 수 없다. 그리고 복도에서 들려오는 말소리
January 31, 2025 at 12:36 PM
법대에서 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벌써 3시였다. 나는 이 시간을 무척 좋아했다. 햇살이 찬란하면서도 눈이 부시지 않았다.
January 31, 2025 at 12:36 PM
대부분의 세상은 낡아가는데 어떤 것들은 변치 않고 우두커니 아름다웠다.

행복은 순간이고 여운도 짧다. 불행은 자주 오고 여운도 쓸데없이 긴데.

먼 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배를 내어 주고 싶다가도 소유물처럼 나와 함께 침몰해 주길 바라고 있어.

부족한 게 없어 보이는 어른들 선물 사는 게 제일 어렵다.
January 31, 2025 at 12:36 PM
중국은 닭의 머리, 봉황의 꼬리 라고 하는구나?
우리는 뱀의 머리, 용의 꼬리 라고하는데.
January 31, 2025 at 12:35 PM
p26 이웃들의 뒷담화는 따지고 보면 아이를 성장시키는 가장 온화하고도 적절한 방법이었다. 위저우저우는 무슨 말을 듣든, 절대로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처럼 순간 안색이 창백해져 들고 있던 그릇이나 꽃병이나 사이다병 같은 것들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울며 달려가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다만 어디선가 주워 온 아이스크림 막대로 흙바닥에 끄적거리면서 놀다가,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그들이 했던 말을 일일이 떠올리면서 천천히 곱씹을 뿐이었다.
알아듣지 못할 말들이 많아도 상관없었다. 일단 기억하기만 하면 되는 거였고,
January 31, 2025 at 12:35 PM
p42 지장보살은 지옥의 고통을 받는 중생이 한 명이라도 남아있다면 자신은 성불하지 않고 지옥에 남겠다고 했다. 중생의 어떤 악업도 용서하고, 지옥이 텅 비지않는 한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기에 오른손에는 암흑의 세상을 비추는 투명한 보주를, 왼손에는 고리가 달린 지팡이인 석장을 들고있다.
이 불화는 걷던 이가 걸음을 멈출 때, 가슴의 목걸이가 작게 흔들리는 움직임을 표현했다. 그가 멈춰섰을 때 작은 방울 소리도 함께 흔들린다. 누군가 애틋한 이가 뒤돌아 천천히 사라지는데,
January 31, 2025 at 12:34 PM
영어의 헨리(Henry)는
프랑스어로 앙리(Henri)이고,
포르투갈어로 엔히크(Henrique)
January 31, 2025 at 12:34 PM
p24 어딜 감히 지루하려고 해. 세상이 나에게 이렇게 속삭이고 있다. OTT 서비스마다 신작 드라마가 쌓여 있고 책장에는 끝장을 보지 못한 책들이 빽빽하다. SNS를 열어 슬롯머신처럼 피드를 당겼다 놓으면 언제나 잭팟이다. 형형색색 타인의 삶이다. 주워담지 못할정도로 와르르 쏟아진다.
하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순간이 드물게 찾아온다. 이를테면 배터리가 똑 떨어졌는데 고속버스를 타고 네시간을 달려야한다거나, 억지로 끌려온 콘퍼런스에서 두시간을 버텨야하는 상황 등. 휴대폰도 TV도 책도 없이 오로지 시간과 나만 존재하는 거대한공백
January 31, 2025 at 12:34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