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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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말 인용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아요. 마음 편히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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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블루스카이에 짧고 별것 없는 글을 쓸 때조차 문장을 한 번에 제대로 쓸 수 없는 걸까요. 게시글 지울 때마다 좋아요 눌러 주신 분들께는 늘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좋아요 숫자를 확보하는 것보다는 꼴사나운 문장이 들어간 게시물을 발견할 때마다 지우고 다시 쓰는 것이 제가 이곳에서 정신 건강을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수제 게시글을 생산하는 데에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하오니 모쪼록 양해 부탁드려요.

(이 글도 두어 시간 뒤에 다시 보면 분명 어딘가 마음에 안 들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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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클라이맥스에서 퍼즐 상자를 열다가 닫는 행위로 수도사들을 하나씩 격퇴하는 과정이 이렇다 할 변주 없이 네 번 반복되니까 좀 심심할 뿐만 아니라 이상하기까지 해요. 상자를 열면 수도사들이 찾아온다, 닫으면 물러난다, 그게 기본 원리인 건 알겠지만 수도사가 눈앞에 하나씩 나타날 때마다 상자를 열다가 닫으면 하나씩 돌아간다, 는 너무 대충이잖아요. 보고 있노라면 상자와 소환 간의 정확한 관계나 상자의 작동 순서 및 형태가 아무래도 신경 쓰인단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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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는 그렇다 치고, 후반부의 주인공으로 나선 커스티와 수도사들의 대립도, 수도사들의 압도적으로 뛰어난 디자인을 내세워 기세로 밀어붙여서 그렇지 실은 좀 싱거워요. 논리보다 분위기로 승부를 거는 호러를 좋아하긴 하지만 여기서는 클라이맥스의 대립 저변에 깔린 논리를 더 정교하게 다듬었어도 좋았을 거예요.

예를 들어 커스티는 수도사들에게 프랭크의 행방을 알려줄 테니 자신은 끌고 가지 말라고 흥정한 상태잖아요. 물론 핀헤드가 '그건 그때 가서 두고 보자'라며 확답을 피하긴 했지만, 그래도 조건을 더 따졌더라면 더 재밌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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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남해 여왕의 복수 (Pembalasan Ratu Pantai Selatan, 1988)

라는 제목의 인도네시아 영화입니다만, 과연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군요. 〈레이디 터미네이터〉라는 영어 제목이 훨씬 유명하거든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일단은 〈터미네이터〉 표절 · 아류작입니다만, 제임스 카메론에게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정신 나간 광경들이 잔뜩 나오는 미친 영화로 컬트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어요. 영어 더빙판 DVD는 존재합니다만, 인기에 힘입어 제대로 발굴 · 복원되기를 염원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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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딸기 백서 (The Strawberry Statement, 1970, 미국)

60년대 후반 미국에서 민권 · 반전 운동의 물결이 거세지자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들도 '유행'에 편승했죠. 그 결과물 중 하나예요. 혁명에 온몸을 던지는 영화라기보다는 당대의 대학 투쟁 풍경을 훑는 풍속도에 그치지 않나 싶습니다만, 그것도 싫진 않고, 어쨌거나 대학생들이 캠퍼스를 점거하고 "Give Peace a Chance"를 부르다 경찰에 끌려 나가는 광경을 보는 것은 뇌에 흠집을 내는 의미 있는 경험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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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 〈열화청춘〉 올라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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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Battle After Another〉의 "Battle"에 대한 번역어로 "투쟁"을 제안한 친구의 의견에 솔깃. 내게 디자인 능력이 있었더라면 〈투쟁을 넘어 (다음) 투쟁으로〉 같은 제목을 붙인 8, 90년대 대학 운동권 스타일 포스터를 만들어 봤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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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glourious Basterds〉를 한국어로 어떻게 옮기면 좋을지 십육 년째 고민인데 이 번역 무척 마음에 든다. 어쨌든 제가 마음대로 번역한 거 아니고 정식 일간지에서 사용한 제목입니다?
‘상놈의 개자식들’ (Inglourious Basterds) - 미주 한국일보
미주 1등 정상의 신문 미주한국일보가 생생한 미국 관련 뉴스를 전달해 드립니다.
www.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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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위험한 사업 (Risky Business, 1983, 미국)

영화 포스터 아티스트 드루 스트러전을 추모하며. 젊은 톰 크루즈가 빈집에 홀로 남아 와이셔츠에 팬티 바람으로 립싱크하며 춤추는 장면이 유명해서 80년대에 유행한 십 대 청춘 성장 빙자 섹스 코미디 중 하나로만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그런 성격도 있지만 동시에 마이클 만 풍의 네오 누아르이자(시카고! 탠저린 드림! 필 콜린스!) 80년대 물질만능주의 문화에 관한 차갑고 신랄한 풍자극이기도 합니다. 극장판 결말보다는 감독판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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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한 번 넘어가는 걸로 안 끝남. 스트로베리크림향 닥터 페퍼의 경우 처음 마셨을 때 아래와 같은 소감을 남겼는데, 이후 지금까지 넉 달 동안 몇 캔을 더 마셨는지는 저와 편의점과 한국코카콜라만의 비밀로 남겨 두겠어요.

하지만 여러분 앞에 맹세합니다. 제가 연세우유 교보문고맛 생크림빵을 자의로 사 먹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예요. (난 애초에 연세우유 생크림빵을 좋아하지도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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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런 시도에 대체로 관대하므로 이것도 싫다고까지 하진 않겠지만, 스트로베리크림향의 츄파춥스스러움이 먼저 치고 나온 다음 닥터 페퍼 본연의 맛이 뒤늦게 따라오는데 특유의 체리 맛은 스트로베리크림향과 뒤섞여 가려지고 쌉쌀함만 남아서 아무래도 닥터 페퍼로서는 미진하네요. 2+1 행사에 넘어가지 않고 하나만 사길 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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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저딴 걸 누가 돈 주고 사 먹지?', '한 놈만 걸려라 이건가?'에서 누구, 한 놈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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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든 세상이 조금은 바뀌려는지 신제품 도입에 취약한 우리 동네 편의점에 갑자기 이런 괴이한 물건이 들어와서 안 살 수가 없었고요.
닥터 페퍼 제로 스트로베리크림향 350ml 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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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호기심이 뭘 죽이고 어쩌고 웅얼웅얼... 빵까지 찍을 생각은 없었는데 또 막 저딴 게 들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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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맥아담스 + 샘 레이미 호러 신작 😍😍😍

그런데 20세기스튜디오(디즈니) 영화에 1월 개봉작... 자칫하면 그저그런 기성품 스트리밍 서비스 컨텐츠 취급 받고 묻히겠군. 부디 잘 나왔고 성공하기를 🙏🙏🙏
Send Help | Official Trailer | In Theaters Jan 30
YouTube video by 20th Century Stu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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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마크스의 산 (マークスの山, 1993)

제가 처음 서울아트시네마에 발을 들인 게 2003년 최양일 회고전이었기 때문에 (당시 두 편밖에 보지 않았음에도) 최양일 감독의 영화에 막연한 호감이 있는데 후기작인 〈피와 뼈〉, 〈퀼〉, 〈수〉 정도를 제외하면 보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이미 본 영화든 아직 못 본 영화든 다 보고 싶습니다만 특히 다카무라 가오루의 하드보일드 경찰 소설 『마크스의 산』을 멋지게 영화화했다는 이 작품이 궁금해요. 회고전 당시 원작을 읽은 상태였더라면 놓치지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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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스티 입장에서는 줄리아든 프랭크든 수도사들이든 전부 무섭고 불가해하고 물리쳐야 할 반동 인물일 뿐이라서 클라이맥스가 단순한 대결 구도로 흘러가죠.

줄리아를 계속 주동 인물로 두고 커스티와 반목하는 가운데 프랭크와 더불어 수도사들을 마주하도록 했더라면 소재를 더욱 깊이 탐구하고 밀어붙일 여지가 있지 않았을까요.

프랭크 대신 자신이 끌려가려 한달지, 커스티를 프랭크 대신 제물로 바치려다 망한달지, 프랭크는 두려워하고 피하려는 수도사들에게 오히려 줄리아가 매료된달지... 여러 가지 가능성이 떠오르는데요. 뭐든 가능한 사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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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후반부는 살짝 아쉽다고 생각해요. '선한 주인공이 진상을 파악하고 악에 맞서 최악의 사태를 막아낸다'는 정석적인 흐름으로 이야기를 봉합하기 위해서 이전까지 조연에 머무르던 의붓딸 커스티를 줄리아 대신 서사의 중심으로 내세우죠. 그 전환이나 이후의 리듬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감상자와 시선을 공유하는 역동적 주체였던 줄리아가 갑자기 악당 넘버 투로 격하되니까 아무래도 조금 맥이 빠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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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등장인물 넷 모두 주인공이 될 자격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줄리아를 서사의 중심으로 채택한 것이 탁월해요. 남편에게 애정과 불만을 함께 품고 있고, 남편의 전처소생인 딸과 서먹하고, 남편의 죽은 형을 향한 격정을 잊지 못하고, 결국 그를 되살리기 위해 몰래 살인을 저지르면서 혐오와 공포와 쾌락을 오가는 등, 물리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가장 역동적인 캐릭터니까요. 다시 말하지만 더 게으른 창작자라면 악역 조연 2로 썼을 법한 강한 인상의 클레어 히긴스에게 입체적인 역할을 맡긴 데에서 오는 의외성이 그러한 역동성을 배가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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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그리핀과 피닉스 (Griffin and Phoenix, 1976)

시한부 판정을 받은 두 중년 남녀가 죽음의 심리학에 관한 강의에서 만나 사랑에 빠져요. 하지만 둘은 상대방도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은 알지 못하죠. 울리려고 작정한 듯한 최루성 멜로드라마 설정인데, 그래도 좋고, 또 그것만은 아니라고 들었어요. 주연이 피터 포크와 질 클레이버그라면 믿을 수 있죠. 하지만 20세기폭스에서 VHS로밖에 낸 적 없다는 이 TV 영화를 아래 유튜브 영상 말고 더 제대로 된 품질과 경로로 볼 날이 오리라고 믿긴 쉽지 않네요.
Griffin and Phoenix - DIR Daryl Duke - Peter Falk , Jill Clayburgh
YouTube video by andyyel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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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배우는 앤드루 로빈슨.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더티 해리〉에서 조디악 킬러를 본뜬 연쇄 살인마 스콜피오를 연기한 것으로 유명한 배우죠. 그런 배우가 '남편' 역인데 믿을 수 있겠어요?

여자 배우는 클레어 히긴스. 주로 연극, TV에서 활동하다 〈헬레이저〉가 사실상의 영화 데뷔작이었는데 물론 연기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도 앤드루 로빈슨과 남매라고 해도 믿을 법한 저 얼굴 때문에 캐스팅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둘 다 〈시계태엽 오렌지〉의 말콤 맥도웰이 떠오르는, 고양잇과 맹수의 얼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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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처음 육 분이 지나고 음산한 비밀이 숨어 있는 집에 새 커플이 들어오는 순간, 캐스팅, 더 정확하게는 두 사람의 얼굴에 탄성을 흘리게 돼요. 이야기 흐름상 이 두 사람은 숱한 호러 영화에 나오는 '오랫동안 비어 있던 집에 들어와 새 삶을 시작하려는 커플'일 텐데요, 하지만 다가올 공포 앞에서 서로를 믿고 의지할 애정 충만한 한 쌍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 이미 다른 동네에서 사람 하나쯤 파 묻고 왔을 것만 같은 무척 의심스럽게 생긴 얼굴이죠. 거기서부터 의표를 찌르고 들어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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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한 해 차이로 나온 〈파리〉와 재미있는 대조를 이루지요.

〈파리〉는 신체가 붕괴하며 비인간으로 나아가는 남자와 그의 인간성을 붙들려 애쓰는 여자의 순애보라면,

〈헬레이저〉는 이미 갈기갈기 찢기고 다른 세계로 넘어간 불륜 상대의 신체를 복구하기 위해 배우자를 배신하고 살인도 불사하는 여자의 도착적 치정극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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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헬레이저 (Hellraiser, 1987)

원작 중편 『헬바운드 하트』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하며 다시 보았죠. 처음 본 순간부터 실물 특수 분장 및 효과를 이용한 박력 넘치는 신체 변형 묘사 이상으로 저를 매혹했던 것은 클레어 히긴스가 연기한 줄리아를 주체로 내세운 맹렬한 (퀴어) 멜로드라마예요. 그런 점에서 〈파리 / The Fly〉(데이비드 크로넨버그), 〈살아있는 시체들의 귀환 3〉, 〈노스페라투〉(로버트 에거스) 등과 함께 떠올리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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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집법선봉 (執法先鋒, 1986, 홍콩)

법을 집행하는 선봉이라는 제목과 달리 적법하게 처벌할 수 없는 악인들을 위법하게 처단하는 검사가 주인공이라 요즘 한국인들에게는 영 내키지 않으려나요? 하지만 도무지 법조인처럼 생기지 않은 원표가 제도와 윤리에 대한 아무 고민 없이 80년대 홍콩 영화 최고 수준의 액션을 펼쳐 살인에 살인을 거듭하며 얼을 빼놓기 때문에 그런 고차원적인 고민에 빠질 겨를이 없습니다. 그 무자비함의 수위는 계속 높아져 영화가 끝난 순간 감상자는 자신이 과호흡 · 탈진 상태에 이르렀음을 깨닫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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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해롤드 디들복의 죄 (The Sin of Harold Diddlebock, 1947)

무성 코미디 스타 해롤드 로이드의 마지막 출연작 + 발성 코미디 명장 프레스턴 스터지스의 파라마운트 시절 이후 첫 연출작. 로이드의 전성기 대표작 〈신입생〉의 속편인데, 개봉 후 반응이 좋지 않자 제작자 하워즈 휴즈가 얼른 내린 뒤 장장 사 년을 들여 재촬영 · 편집해서 〈광란의 수요일〉이라는 제목으로 재개봉했지만 결국 반응은 신통찮았대요. 어쨌거나 몇 년 전 UCLA 필름 & 텔레비전 아카이브에서 완성했다는 복원판을 보고 싶은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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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체코어 제목이 무슨 뜻인지는 굳이 찾아 볼 생각 안 함.
2) 영어 제목이 cremator네? 뭔 뜻이지? 영한사전 볼까?
3) "소각"은 쓰레기 소각장 떠올라서 기각.
4) "화장"은 뒤에 뭔가를 붙여야지 그냥 그것만 쓰면 cosmetic 같음.
5) "화장로"는 낯섦. 한국인이라면 역시 "화장터"지!
6) '화장터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살려야겠는데 어떻게 한담... 옳거니, 사전들이 "인부"를 썼구나!

아마 이런 흐름이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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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새벽 한 시 (One A.M., 1916, 미국)

채플린은 1914년부터 영화를 만든 사람인데 한국에는 (아마도 배급상의 이유로) 1918년 이후 작품만 소개되고 그 이전 경력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취급하는 게 속상해요. 저는 그가 1916~1917년에 뮤추얼 영화사와 계약해서 만든 열두 편의 두 릴짜리 영화들을 참 좋아합니다. 그중에서도 〈새벽 한 시〉는 한밤중 잔뜩 취해 집에 돌아온 채플린이 혼자 주정을 부리는 모습만으로 영화 전체를 빼곡하게 채운 순수 슬랩스틱 코미디라서 더욱 특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