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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자동화로 인해 '과정에 담긴 가치'가 훼손되어 당장의 편리함과 장기적인 이득을 맞교환하는 실수를 종종한다. 자동화를 잘해서 과정에 담긴 가치를 오히려 증강시킨 사례를 정리해봤다. wiki.g15e.com/pages/Augmen...
과정에 담긴 가치의 증강
과정에 담긴 가치를 증강하기.
wiki.g15e.com
이재명이 역대 최다득표를 한 점, 이준석이 선거비 보전을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된 점은 아주 기쁘다. 다만 권영국의 지지율이 더 높지 않은 게 아쉽고 미안하다.
권영국의 공약은 나랑 잘 맞는 편인데(어떤 정치성향 테스트에 의하면 88% 일치) 이걸 그대로 믿는건 아니다. 원래 지지율이 낮을수록 강하고 선명한 메시지를 낼 수 있는거니까. 게다가 권영국이 지금 당장 당선된다 하더라도 그의 공약이 그대로 실행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 한국은 아직 그렇게 좋은 나라가 아니다.

부디 이재명 정부가 성공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 덕에 다음 대선 혹은 다다음 대선에서는 꼭 진보정당을 뽑고 싶다.
이재명은 성남시장 시절부터 존경하던 정치인이자 행정가다. 기회주의자들의 이재명 악마화는 전혀 믿지 않는다. 그가 공약을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할거라고 믿는다. 다만 그는 보수주의자이고 애국자라서 나랑 맞지 않을 뿐이다. 모든 공약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보편기본소득 관련 정책은 적극 지지한다.
타협하는 마음으로 매번 민주당을 찍는다. 나는 좌파고 애국심도 없는 반면 민주당은 애국보수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맞지 않는다. 국민의힘을 비롯한 일부 정치 세력과 일부 종교 세력은 “보수”가 아니라 “반인륜적 기회주의 세력”에 불과하기 때문에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다.

반인륜적 기회주의 세력이 충분히 정리되고, 민주당이 정통보수로 자리잡고, 언론이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하면(현재의 언론은 기회주의 세력의 일부이거나 극도로 무능하다), 그러면 드디어 안심하고 내가 실제로 지지하는 진보 계열 정당을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주1회 영어로 시사 토론(?)을 하는 모임(?)이 있는데, 상대방이 트럼프+일론 지지자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강제로 입이 트이는 기적이 일어난다 ㅋㅋㅋㅋ
이 장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보수주의란 애착의 철학”이라는 점. 세상은 계속 변하지만 그 안에서 물려받은 좋은 것들–신뢰, 책임, 전통, 소속감–을 지키기 위해 어떤 변화는 늦추고 걸러내는 선택이 필요하다는 것.

(2장 끝)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 많은 이가 이주, 혼종 문화, 상업화 등으로 인해 ‘정착(settlement)’이 어려워졌다고 말함. 그러나 “보수주의란 결국 우리가 어디에 소속돼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이며,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나도 그 틀 안에서 유지할 수 있는 가치를 찾고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주장.

(남들이 잘 "정착"해서 살던 지역에 무력으로 침범하여 식민지로 삼고 국경을 자기들 마음대로 설정하고 사람들을 강제 이주시켜놓고선, "정착"을 운운한다. 보수주의자들이 말하는 소위 '급격한 이주' 문제의 근본 원인은 누구에게 있나?)
거대 담론(진보, 성장, 평등)으로 사회를 위에서 통제하려고 들면 공동체가 본래 지니던 고유의 목적이 훼손됨. 예컨대, 평등을 명분으로 학교를 과도하게 개혁하면, 본래의 지식 전달 기능이 훼손되고 오히려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 있음.

(당장의 결과를 극대화하는 전략과 당장 조금 희생하더라도 미래의 가능성을 높이는 전략 사이의 고민이 필요한데(exploration-exploitation dilemma), 위 주장은 당장의 결과를 극대화하는 관점에 치우친 느낌. 이는 저자가 말하는 보수의 가치-미래 세대와의 연결성-에도 위배)
저자는 이러한 ‘소속감과 연대감’을 “oikophilia(집과 공동체에 대한 사랑)”로 부르며, 인간이 이걸 통해 공동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희생하거나 자원을 아낄 동기가 생긴다고 주장. 공동체를 단지 개인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시장처럼 여긴다면, 환경 파괴와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생긴다고 지적.

(하지면 현대 사회에서 사익 극대화에 매몰되어 환경을 적극적으로 파괴하는 이들은 정작 왜 보수주의자들인지? 왜 트럼프와 머스크는 지구온난화를 부정하나? 왜 '공동체'에 속해 있던 사람들을 내쫓고 있나?)
정치철학의 고전적 전통(홉스, 로크, 롤스 등)은 ‘사회계약’으로 국가의 정당성을 설명하지만, 저자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빠졌다고 지적. “이미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we)이 있다”는 전제 조건이 사회계약 자체보다 앞선다는 것. 또 미래 세대까지 고려하면, 단순한 계약 이상의 ‘연속성’이 필요.
(저자는 전통을 문화 진화 과정에서 얻은 밈(meme)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면 '진화적 시간 지연(time lag)'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나친 보수주의는 '이성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전통'을 고수하느라 진화적 시간 지연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반대로, 지나친 진보주의는 이상적 합리성(고전적 합리성)만 추구하다가 생태적 합리성을 훼손할 수 있겠다. 저자가 본문에서 지적하는 문제도 이 부분. 하지만 저자는 전자-시간 지연-의 문제는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전통을 그저 오랜 관습으로 치부하면 안됨. 전통은 오랜 시행착오 끝에 형성된 해결책. 따라서 전통을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수 있음 버크가 말한 '편견(prejudice)'은 이전 세대가 터득해온 '이유 있는 편향'임. 개인의 이성은 제한적이지만 사회가 축적한 경험과 지혜는 훨씬 방대함.
버크의 프랑스 혁명가 비판의 핵심은 과거 세대가 남겨놓은 학교·교회·병원 등 공공 자산을 현세대의 임의적 목적을 위해 탕진했다는 점. 이는 결국 미래 세대가 이용할 수 있는 사회 자본의 파괴로 이어짐. 저자는 다른 혁명들에서도 같은 실수가 반복된다고 말함.

사회적 질서는 ‘위에서 주어진 목표’를 위해 개인을 동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가족·학교·직장·지역 등 일상적 관계 속에서 자생적으로, 즉 ‘아래에서 위로’ 형성돼야 함. 중앙 정부가 모든 걸 지휘하면 개인의 책임 의식은 사라지고 결국 서로에게 무관심해짐.
저자는 인간이 자기 이익만 극대화하는 ‘경제적 인간(homo oeconomicus)’ 모델로 설명될 수 없다고 주장. 인간은 근원적 두려움·수치심·죄책감·정의감 등 다양한 동기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 사회에는 ‘자발적 희생’이란 요소가 존재.

혁명적 사회주의가 범한 오류는 정치 질서를 경제나 계획의 문제로 다룬 데 있음. 이와 대조적으로, 버크(E. Burke)는 사회를 ‘죽은 이, 살아있는 이,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의 연대’로 설명. 물려받은 것을 함부로 소비해선 안 되고, 미래 세대에 물려줄 의무가 있다는 것.
2장. 가정에서부터 시작하기 (Starting from Home)

(국가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뜻으로 보임. 하향식 계획경제가 아닌 상향식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의미)

현대인은 수많은 낯선 이들에 의존해 살아감. 질서와 협조가 가능하려면 자연스런 신뢰+책임감이 필요.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사익 추구가 자원의 효율적 분배를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국부론), 다른 저작(도덕감정론)에선 인간의 동정심/희생/배려 등이 보이지 않는 손의 전제 조건임을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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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근본주의는 국가나 지역 공동체보다 종교를 우선한다는 점, 서구 문명의 핵심인 책임과 관용과 법질서를 부정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민주주의와 대립할 수 있다고. 유럽의 법치와 사회 안정의 토대엔 책임, 용서, 참회 등 기독교 윤리가 있음.

(전형적 지배자의 논리. 유럽 사는 기독교인은 사회체제와 자신의 종교가 일치되기에 불편이 없음. 유럽 사는 이슬람교도가 느끼는 어려움은 그들 문제니 '살던 곳으로 돌아가라'고 말함. 한편 살던 곳으로 못 돌아가는 이유는? 상당 부분 유럽의 과거 제국주의+현재 계속되는 경제적 착취 탓)
저자는 자신이 창간한 보수지에 다문화 포용적 교육 정책을 비판하는 기고문을 실어주었다가 차별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고, 언론에 시달리다가 결국 대학을 그만둠. 상대방을 "차별주의자"라고 낙인 찍고 토론을 막아버리는 세태에 경악함.

공산주의 몰락 후 동유럽 민주화 과정에서 EU의 무분별한 확대는 인재 유출 및 중앙집권적 관료주의를 심화시킨다고 주장. EU는 또한 기독교 유산을 헌법에서 배제하고, 비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유럽 문명을 위협한다고 지적.
젊은 시절 저자는 예술, 문학, 철학 등 ‘문화’에 대한 보수주의적 입장을 지니고 있었음. 학창 시절 T. S. 엘리엇의 시나 쇤베르크의 음악에서 ‘과거와 전통을 지키기 위해 근대성과 창의성이 필요하다’는 통찰을 얻었음.

70년대 말 영국의 경제문화적 침체기에 대처가 보수당 대표로 등장. 대처는 시장경제, 개인 자유, 국가주권, 법치 등을 내세우면서 학계에서 멸시당했으나 대중의 지지를 얻었으며, 대처의 이론적 토대는 빈약했으나 그가 자유 아래에서의 공동체와 전통을 진정으로 옹호했다고 평가.
1장. 나의 여정 (My Journey)

영미권 포함 서구 학계가 대체로 좌파 성향임을 지적. 보수 지식인들은 마치 '프루스트 소설 속의 동성애자들처럼' 서로 눈치보며 정체를 숨겨야 하는 처지. (계몽주의 이전 기독교 가치를 지키려는 저자가 동성애를 비유로 갖다 써도 되는지 의문🤔)

저자는 중산층 출신. 교사였던 아버지는 노동당 활동을 하면서도 농촌과 전통 건축을 보존하려는 강한 보수 정서를 공유.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시하면서도 동시에 보존할 가치에 깊은 애착을 보임. 저자는 이를 통해 두 가치 사이의 복합적 심리를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