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18세 소녀 최말자가 겪은 61년간의 법정 투쟁기…성폭행 저항하다 가해자 혀 절단, 오히려 중상해죄로 기소된 1964년의 충격적 판결 #꼬꼬무 #최말자 #꼬리에꼬리를무는그날이야기 #정당방위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가 오는 18일 방송에서 다룰 '최말자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정당방위 판례 중 하나로 남아 있다. 1964년 경남 김해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61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거쳐 마침내 정의가 구현된 역사적 사례로 기록되었다. 이야기꾼 장도연, 장현성, 장성규는 출연진 박선영, 웬디, 김남희와 함께 당시 18세 소녀가 겪어야 했던 참혹한 현실과 사법부의 편견을 생생하게 재구성했다.
1964년 5월 6일 오후 4시경, 경남 김해군 대동면 예안리의 평범한 일상이 악몽으로 바뀌었다. 집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던 18세 최말자에게 이웃 마을의 21세 청년 노재동이 찾아왔다. "할말이 있으니 잠시 만나자"는 그의 요청에 최말자는 단호히 거절했다. "만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최말자에게 노재동은 "기어이 만나야겠다"며 집요하게 버텼다. 이야기꾼들은 이 순간부터 이미 강압적 분위기가 형성되었음을 지적하며, 당시 여성이 남성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던 사회적 맥락을 설명했다.
길을 물어본다는 노재동의 말에 최말자는 어쩔 수 없이 집에서 100미터 떨어진 큰 길까지 그를 안내했다. 그런데 갑자기 노재동이 "키스만이라도 하자"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장도연은 이 대목에서 "당시 18세 소녀가 느꼈을 당황감과 공포감은 상상하기 어렵다"며 목소리를 떨었다. 이후 20분간 벌어진 공방은 처절했다. 노재동은 최말자를 넘어뜨려 강제로 입을 맞추려 했고, 최말자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그의 혀를 깨물었다. 1.5cm가량의 혀가 절단되는 순간, 노재동의 비명에 놀란 최말자는 급히 집으로 도망쳤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린 노재동은 피투성이가 된 채 최말자의 집으로 달려가 "혓바닥을 찾아달라"고 애원했다. 프로그램에서는 이 장면을 재현하며 최말자와 남동생이 길에서 잘린 혀 조각을 찾아 헤매던 기괴한 상황을 묘사했다. 노재동은 잘린 혀를 들고 2km나 떨어진 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받고 입원했다. 장현성은 "피해자인 최말자가 오히려 가해자의 혀를 찾아주는 상황 자체가 당시의 비정상적인 사회 구조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사건 직후 벌어진 일들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노재동의 일행 10명이 최말자의 집에 몰려와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며 난동을 부렸다. 노재동은 "나를 병신으로 만들었다"며 분노를 쏟아냈다. 이야기꾼들은 이러한 집단적 보복 행위가 당시 농촌 사회의 남성 중심적 권력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고 해석했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검사의 태도였다. 검사는 최말자에게 "남자를 불구로 만들긴 했으니 책임져야 하지 않냐. 결혼하면 해결된다"고 실실 웃으며 말했다. 웬디는 이 대목에서 "성폭력 피해자에게 가해자와 결혼하라고 권하는 것이 당시 사법 기관의 인식 수준이었다"며 분개했다.
최말자는 영장도 없이 구속되어 6개월간 옥살이를 해야 했다. 검찰이 경찰의 정당방위 판단을 뒤집고 조사를 시작한 것이다. 이야기꾼들은 당시 검찰이 경찰 수사를 지휘하던 시절의 권력 구조와 함께, 성폭력 사건에 대한 사법 기관의 몰이해를 비판적으로 조명했다. 1964년 7월 초부터 9월 1일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최말자가 불법 구금 상태에서 조사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후에 대법원에서 인정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증언의 충돌은 프로그램의 핵심 갈등 요소였다. 현장검증에서 "왜 노재동을 만났느냐"는 질문에 최말자는 "빨리 보내기 위해서였다"고 답했지만, 노재동은 "친절하게 웃으며 대해주어서 함께 100미터나 걸어갔었다"고 주장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사건 경위에 대한 정반대 증언이었다. 최말자는 "노재동이 성폭행할 목적을 가지고 강제로 키스했다"고 주장했지만, 노재동은 "첫 번째 키스에서는 순순히 응했고, 서로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두 번째 키스 중에 사고가 일어났다"며 완전히 다른 버전을 제시했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이 말을 들은 최말자가 법정에서 보인 반응은 절망적이었다. "이 개새끼야! 왜 거짓말을 하냐"며 악을 쓰며 노재동에게 달려들었고, 재판장이 직접 나서서 말려야 했다. 김남희는 "법정에서조차 자신의 진실을 인정받지 못하는 피해자의 절규가 느껴진다"며 안타까워했다. 장성규는 "당시 여성의 증언보다 남성의 증언이 더 신뢰받는 사회적 분위기였다"고 분석했다.
당시 사회의 이중적 시선도 방송에서 주목받았다. 현장검증을 방청한 시민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그런 표독한 처녀가 있느냐"며 노재동을 동정하는 목소리와 "입술이 제2의 정조가 아니냐? 어느 처녀가 겁탈하려는 총각을 가만두겠느냐"며 최말자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대립했다. 이야기꾼들은 이러한 사회적 분열이 여성의 정절과 순결을 중시하는 가부장적 가치관에서 비롯되었으며, 동시에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인정하지 않는 모순적 구조를 드러낸다고 해석했다.
1964년 10월 21일 검찰의 구형은 충격적이었다. 최말자에게는 징역 단기 1년, 장기 3년을, 노재동에게는 징역 8개월을 구형한 것이다. 피해자인 최말자가 오히려 더 무거운 형을 받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야기꾼들은 이러한 구형이 당시 성폭력에 대한 사법부의 인식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1965년 1월 13일 부산지방법원의 판결은 시대적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다. 이근성 부장판사는 최말자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노재동에게는 특수협박 및 주거침입죄를 적용하여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판결문의 내용은 더욱 문제적이었다. "최말자가 노재동의 혀를 깨물어 저항한 것은 설령 그것이 자신의 순결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하더라도 노재동의 혀가 1.5cm나 잘려 나간 이상 정당방위로 보기에는 지나쳐 인정될 수 없다"고 명시했다. 더 나아가 "노재동이 최말자를 덮친 데는 최말자가 원인을 제공한 부분도 있다"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박선영은 이 판결문에 대해 "피해자가 저항할 권리조차 제한하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당시 사법부의 성인식이 얼마나 후진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최말자가 법을 몰라 항소하지 못해 1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된 점이었다. 당시 농촌 지역의 일반적인 교육 수준과 법률 지식의 부족이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것이다.
세월이 흘러 밝혀진 사실들은 당시 판결의 부당함을 더욱 명확히 했다. 노재동은 언어 구사 능력을 잃거나 장애인이 되지 않았고, 신체검사 1급으로 군 복무도 마쳤으며, 가정을 이루고 자식까지 낳아 평범하게 살았다. 이야기꾼들은 "당시 판결의 근거였던 '심각한 후유증'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다"며 판결의 허구성을 지적했다.
56년이 지난 2020년 5월, 최말자는 마침내 용기를 내어 재심을 청구했다. 하지만 여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2021년 2월 18일 부산지법은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권기철 부장판사는 "무죄로 볼 만한 명백한 증거가 없고, 사회문화적 환경이 달라졌다고 하여 사건을 뒤집을 수 없다"고 밝혔다. 2021년 9월 6일 부산고법도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됐다고 평가하기 어렵다"며 재차 기각했다.
이야기꾼들은 이러한 연이은 기각 결정이 사법부의 보수적 성향과 기존 판결에 대한 권위의식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장도연은 "피해자가 두 번 죽는다는 말이 있는데, 최말자 할머니는 61년 동안 계속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전환점은 2024년 12월 18일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이었다. 대법원 2부 오경미 대법관을 주심으로 한 재판부는 "1964년 당시 최말자가 7월 초순경 검찰에 소환되어 9월 1일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불법 구금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는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더라도 형사소송법 제422조에서 규정한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로 간주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법원이 최말자의 진술 자체를 신뢰할 만하다고 본 점이었다. "최말자의 진술은 일관성이 있으며 당시의 재판 과정과 부합하는 직간접 증거들이 이를 뒷받침한다"며 "원심이 최말자 진술의 신빙성을 깨뜨릴 충분한 반대 증거나 사실조사를 하지 않고 증거 부족을 이유로 청구를 기각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2025년 1월 22일 부산고법에서 열린 재심 기각결정에 대한 항고 사건 심문기일에서 검찰의 태도 변화가 주목받았다. 검찰은 "대법원 결정의 취지를 존중해 검찰은 재심 개시 의견을 밝힌다"고 밝혔다. 이날 증인신문에서 최말자는 "1964년 7월 초 아버지와 검찰청에 가서 죄수복을 입고 조그만 방에서 조사받았고, 교도소에서 총 6개월 12일간 있었다"고 생생하게 진술했다.
61년 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 씨가 10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재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최말자는 무죄다"를 외치고 있다. 최씨는 61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2025.9.10 / 연합뉴스
2025년 2월 13일 부산고법의 재심 개시 결정은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재욱 부장판사는 "진술서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이고 일관된다"며 "재심청구의 동기에 부자연스럽거나 억지스러운 부분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특히 "형사소송법이 정한 적법절차를 준수하지 않은 채 영장 없는 체포감금이 이뤄졌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인정했다.
2025년 7월 23일 검찰의 무죄 구형은 상징적 의미가 컸다. 검찰은 "본 사건에 대해 검찰은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한 행위로써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검찰의 역할은 범죄 피해자를 범죄 사실 자체로부터는 물론이고 사회적 편견과 2차 가해로부터도 보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검찰은 "과거 이 사건에서 검찰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 반대 방향으로 갔다"고 인정하며, 최말자를 '피고인'이 아닌 '최말자님'으로 부르면서 "성폭력 피해자로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했을 최말자님께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드렸다"고 공식 사죄했다. 61년 만에 국가기관이 최씨에게 사과한 것이다.
드디어 9월 10일, 부산지법(형사5부)에서 선고된 무죄 판결은 61년 4개월 4일 만의 정의 구현이었다. 김현순 부장판사는 "중상해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피고인이 피해자의 혀를 깨문 것과 관련해 정당방위라고 인정되어 상해죄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인적 사항 확인에 이어 최종 선고까지 1분가량 걸린 공판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방청석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61년 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 씨가 10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재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최말자는 무죄다"를 외치고 있다. 최씨는 61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2025.9.10 / 연합뉴스
법원 청사 앞에서 "최말자가 이겼습니다"라고 외친 최말자의 목소리는 개인의 승리를 넘어 사회 정의의 회복을 상징했다. 기자회견에서 "오늘의 이 영광은 여러분들의 힘과 노력 덕분"이라며 울먹인 최말자는 "주위에서 바위로 계란 치기라고 만류했지만, 이 사건을 묻고 갈 수가 없었다"며 "나와 같은 운명을 가진 피해자들을 위해 앞장설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희망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는 재심으로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가 인정된 최초 사건이었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최씨의 무죄가 선고되기까지 사건 발생일로부터 61년 4개월 4일, 재심 청구일부터 5년 4개월 4일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시민 7만 7천346명이 힘을 보탰다.
변호인단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만으로 재심을 개시할 수 있다는, 재심 사건에서 중요한 법리를 남긴 판결"이라며 "과거 기록이 멸실된 수많은 재심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큰 성과를 남긴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이야기꾼들이 이 사건을 통해 조명할 것은 바로 이런 근본적 질문들이다. 성폭력 피해자의 저항권은 어디까지 인정되어야 하는가. 피해자다움이라는 사회적 편견은 언제쯤 사라질 것인가. 사법부는 시대 변화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가. 61년이라는 긴 세월이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최말자 사건은 개인의 억울함을 넘어 한국 사회의 성인식 변화와 사법정의 실현 과정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 되었다. 61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굽히지 않고 싸운 한 여성의 용기가 마침내 사법부의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런 억울함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매주 목요일 밤 10시 20분,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를 통해 방송된다.